본문 바로가기
경찰학

경찰의 역사

by mr.youk 2023. 2. 1.
반응형

 

 

 

부족국가시대는 아직 국가로서의 행정 체제와 법률 체제 등을 갖추지 못하였고, 초기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정도의 국가조직과 규범이 존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전문 경찰조직은 없었으며, 지배 세력이나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관리가 그 권한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권한을 행사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삼국지위서동이전에 의하면 고조선시대에 팔조금 법 이라는 형벌법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 내려오는 조목은 3개 조목이다.

제1조목은 사람을 죽인 자는 바로 죽이고, 제2조목은 남에게 상해를 가한 자는 곡물로 배상하고, 제3조목은 남의 물건을 훔친 남녀는 노비로 되나 스스로 속죄하려는 자는 50만전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 한사군에 군현경정리의 행정 체제를 두었다. 그리고 각 행정단위에 순찰과 절도범을 검거하는 업무를 관장하게 하는 등의 관직을 두었다. 한편 삼국지위서동이전에 따르면 한사군의 이웃인 동북 지역 및 남쪽 지역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의 부족국가 위치하였다.



부여에는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으며,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12배로 배상하는 일책십이법이 있었다. 남녀 간에 간음을 범한 자와 부인이 투기하는 경우 모두 사형에 처하는 등 형벌이 엄하였다. 그리고 제천행사인 영고 때에는 형옥을 중단하고 죄인들을 석방했다고 한다. 



고구려에는 일책십이법과 사형제가 존재하는 등 매우 엄한 공동체 규범을 유지했으며, 동예는 각 읍락마다 경계를 설정하고 이를 침범할 경우 노예로 배상하는 책화제도를 둔 것으로 알려진다. 한강 이남의 이른바 삼한, 즉 마한, 진한, 변한은 부족의 지배자인 신지 또는 읍차가 통치하였다. 그러나 제사는 천관이라고 불리는 신관이 소도라는 치외법권 지역에서 주관했고, 범죄인이 소도로 도망할 경우 지배자인 신지의 권한이 미치지 못했다.



삼국시대는 왕권이 확립되고 행정조직이 정비되면서 율령이 반포되는 등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반행정과 군사, 그리고 경찰의 기능이 분리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에는 살인과 절도 등의 전통적 범죄 외에도 관인수재죄나 모반죄 등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등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령과 이를 집행하는 행정기관 등이 정교해졌다.



고구려는 중앙은 수상인 대대로에서 선인에 이르는 14 관등 체계를 갖추어 통치했고, 지방은 5부로 나누어 욕살이라는 지방 장관을 두어 행정을 수행하였다. 물론 경찰권도 이들 지배 세력에 의하여 행사되었다. 고구려는 모반죄, 전쟁에 임하여 패배하거나 항복한 죄, 살인죄, 절도죄, 가축 살상 죄, 불효 죄 등을 가지고 있었다.



백제는 고이왕과 근초고왕을 거치면서 6좌평과 16관등제의 행정체계 및 율령을 반포하는 등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은 데 이어 성왕떄는 수도에 5부를 두어 그 장을 달솔이라 하였고, 지방을 5방으로 나누어 그 장을 방역이라 하고, 행정업무를 담당케 하였다. 중앙의 조정좌평이란 공직이 형옥을 관장했다. 



신라는 엄격한 신분 질서 체계인 골품제가 유지되면서 이벌찬부터 조위에 이르는 17관등제의 관료제 그리고 지방의 군주가 행정업무와 군사 업무 등을 수행하였다. 신라는 통일 이후 지방을 9주 5소경으로 나누고 주에 총관을, 소경에 사신을 두었다. 또한 9서당 10저의 군사 조직을 두었는데 주의 총관과 소경의 사신등이 군사 업무, 일반행정 및 질서유지 기능을 함께 관장하였다. 이 시대에는 범죄유형이 좀 더 다양해져 부모살해의 오역죄, 역모죄, 공무원 범죄 등이 등장하였다.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 2군 6위의 군대를 두었는데, 이 가운데 금오위가 순찰 및 도둑 체포, 모반 진압 등의 경찰 사무를 관장하여 행정사무와 군대 사무가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방은 5도 양계제로 구분해 도에는 안찰사를 그리고 계에는 병마사를 그 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들에 의하여 관할 지역에서 행정, 사법, 군사, 경찰 등의 사무를 행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위아라고 하는 국경 지역의 지방기관은 그 장을 현위라고 하였는데 위아를 현재의 경찰서, 현위를 경찰서장이라고 평가하는 관점도 있다. 

고려시대의 특수경찰기관인 삼별초, 순마소, 어사대 등을 들 수 있다. 

삼별초는 야별초라고 불렸으며, 몽골의 침입 시 치안 질서가 문란하여지자 최우가 사병부대를 두었고, 이들은 경찰, 전투 등의 공적인 업무도 함께 수행하였다.

순마소는 충렬왕 때 원의 지방 경찰기관을 모델로 고려에 설치되었다. 이것은 후에 순군만호부로 개편되었다. 순군만호부는 방도금란, 왕권 보호 등의 첩보를 수집하는 등 정보 경찰 기능을 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역사적으로 최초의 정보 경찰이라 부른다.

어사대는 중앙정부의 3성 6부와 독립하여 공무원의 비위를 규탄하고 감찰, 탄핵 및 풍속경찰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오늘날의 감사원이나 경찰청 또는 대검찰청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은 최고의 행정관청인 의정부와 6조 그리고 감찰 기관인 사헌부 등의 기관이 있었다. 경찰 사무는 중앙의 경우 사헌부, 한성부, 의금부 등에 의해 행해졌다. 의정부는 금오 왕부 금부 라고도 하였다. 의금부는 고려시대 순군만호부라고 불리다가 태종 때에 개편되었으며 왕명을 받들어 추국 하는 일과 순작 포도 금란 등 경찰업무를 관장했다. 지방의 경우에는 관찰사와 수령들이 지방행정과 함께 경찰 기능도 함께 수행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경찰권은 일원화되지 못하고 각 관청이 소관사무와 관련하여 직권으로 범법자를 체포해 구금하였는데 이를 직수아문이라고 한다.

반응형

'경찰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찰기관과 그 권한 - 2  (0) 2023.02.06
경찰기관과 그 권한  (0) 2023.02.06
헌병경찰시대  (0) 2023.02.01
경찰학과 경찰  (0) 2023.02.01
경찰학의 의의  (0) 2023.01.30

댓글